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책소개

  • 2023-05-14

    ‘예수님의 이야기’를 통해 본 탈교회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

    책 소개


    하나님의 나그네 된 교회들에게/김승환/비아토르/문양호 편집위원

    미카엘 엔데의   ‘ 끝없는 이야기 ’ 에서 주인공인 바스티안 발타자르 북스가 우연히 읽게 된 책의 내용 이야기와 교감을 이룬다는 것을 느끼다가 그 책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.   그런데 책 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그 여정을 더하면 더할수록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자신이 누군인지 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.   이번에 읽은   < 하나님의 나그네된 교회들에게 >( 김승환 ,   비타토르 ) 는 바스티안의 모습과 고민처럼 이 세상을 나그네로서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의 정체성의 상실과 갈등의 문제를 현 시대의 대표적 신학자라 할수 있는 스텐리 하우어워스의 여러 저작을 통해 분석하고 그 고민을 담아내는 듯하다 .   저자는 탈교회 시대라는 사회적 상황에서 교회가 그 정체성을 상실해가는 원인을 분석한다 .   바스티안처럼 교회가 자기의 이야기로 품어야 할   ‘ 예수님의 이야기 ’ 를 잃어가며 다른 이야기로 그 자리를 대치해가고 변질시켜 나가는 문제를 지적하며   ‘ 예수님의 이야기 ’ 를 회복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.   그런데   ‘ 예수님의 이야기 ’ 를 회복한다는 것은 그저 이것을 말함으로 옳고 그름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그 이야기에서 말하는 덕을 공동체적으로 살아가야 함을 말한다 .  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요새 주목받는 공공신학의 접근방식이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.   그러한 시도는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시도가 될 수 있으며 결국 그것은 세상의 기준에 교회를 맞추려는 시도가 될 수 있고 그것은 교회가 본연의 역할과 사명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한다 .   교회는 교회다움의 구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.   그런데 스텐리 하우어워스는 이러한 교회다움은 각 개인의 노력을 넘어서야 함을 말한다 .   개인의 신실한 제자됨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시대가 주장하는 각 개인으로 살아가고 성공해야 한다는 세속의 신화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.   나를 추구하면 할수록 나를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.   진정한 좋은 성품은 탁월한 사회제도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각 개인들이 서로 인격적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.   그런데 공공신학도 교회의 입지를 드러내기 위해 복음과 예수님 이야기를 말하지만 그것은 세속적 언어와 기준으로 증명하려 하기에 결국 하나의 세속종교로 축소시키려는 노력이 된다고 말한다 .   공공신학이 말하는 충성된 제자도도 세속적인 수준 있는 시민의식으로 대치하는 잘못된 시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.   교회의정체성의 드러냄은 콘스탄티누스 주의처럼 체제와 시스템을 통한 국가종교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교회가 세상을 잘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존재나 역할이 아니라 교회 없이는 세상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기에 교회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.   이러한 접근은 평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도 어떤 운동을 넘어 과정 안에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.   이러한 시도는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.   비폭력 평화주의는 그 평화를 이루어가는 데에 있어서 아주 느릴 수밖에 없다 .   예를 들었던 것처럼 장애인들과의 식사를 할 때 그들이 식사하는 속도에 맞추는 것은 아주 느리고 답답하게 여겨진다 .  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광야의 여정의 속도는 군인의 속도가 아니라 공동체에서 가장 약한 이들의 속도에 맞추어야 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.   교회가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하고 공공신학을 교회의 책무로 여기는 것은 결국 성도가 자신의 정체성 ,   곧 예수님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임을 말한다 .   이러한 정체성을 깨달을 때 세례와 성찬은 진정성을 지닐 수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.   저자는 스텐리 하우어워스를 통해 탈교회의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그 길을 제시한다 .   스텐리 하우어워스가 꼭 정답일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의 고민에 대한 하나의 도움을 더할 수 있을 듯싶다 .   그렇지만 이 고민을 위해서는 이 책에서 계속 제기하는 공공신학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할 듯싶다 .   이 시대 상당히 주목받는 공공신학이 그저 교회에 한때 부는 일시적 시대의 바람일지를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공공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듯싶다 .   추신 : < 한나의 아이 > 에서도 나타나지만 스텐리 하우어워스는 성추문으로 논란을 겪는 존 하워드 요더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인 듯싶다 .   신학자의 신학적 성취와 그 인격적 문제와 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는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스텐리 하우어워스의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요더에 대해 스텐리 하우어워스는 좀더 분명한 언급과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.   물론 내가 그의 책에 과문 ( 寡聞 ) 함에서 오는 무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