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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8-07-06
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
책 소개
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/윤석언, 박수민/포이에마/정현욱 편집위원
기적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?
우리는 기적을 좋아합니다 . 아니 기적을 바랍니다 . 상황이 위급하고 ,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. 그러나 기적이라는 말은 결코 아름다운 말은 아닙니다 . 기적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. 기적 ( 奇蹟 ) 의 정의를 찾아보니 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’ 이라고 알려 줍니다 . 상식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일과 사건들입니다 . 기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. 그들은 일상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. 기적은 좋아해야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. 그럼에도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.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 , 사람의 힘으로는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는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입니다 . 윤석언 형제의 이야기를 읽고 처음 드는 생각이 ‘ 아 ~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면 ’ 이었습니다 .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. ‘ 전신마비 27 년 ’ 짤막한 구절 속에 수많은 일상과 사건들이 겹쳐 있다는 것을 압니다 . 손과 발 ,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 환자를 생각하면 불행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. 그러나 불행 너머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가 없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. 한 사람을 살려내기 위해 가족들의 필사적인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. 이것을 알고 있는 환우는 자멸감과 자괴감에 빠져 자살시도를 수도 없이 합니다 .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버리려고 합니다 . 그런 환우들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.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순간 이러한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. 이 책의 저자이며 주인공인 윤석언 형제는 스물셋의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. 그때가 1991 년이었으니 벌써 27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. 아이가 태어나 스물일곱이면 결혼도 할 수 있고 , 꽃다운 청춘을 보낼 황금의 시간입니다 . 그런데 윤석언 형제는 그 시간을 고스란히 침대에만 누워있었습니다 . 소개글만 간략하게 살펴보고 손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. 그래야 글을 쓰니까요 . 손이 안 된다면 말이라도 하리라 믿었습니다 . 말을 하면 누군가 대필하면 되니까요 . 그러나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마음이 한 없이 무너졌습니다 . 윤석언 형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,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 철저한 전신마비 환자였습니다 . 그럼 글은 어떻게 썼을까요 ? 추천한 남종성 목사님의 이야기를 직접 옮겨 보겠습니다 . “ 이 책은 한 글자도 낭비될 수 없는 책입니다 . 전신마비인 석언 형제는 특수 스티커를 붙인 안경을 쓰고 침대에 누워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. 눈으로 자판을 치는 것입니다 . 글자의 한 획도 아무렇게나 쓸 수 없는 사람입니다 .” 이 책은 탁월한 문장으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.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을 사실대로 표현한 글입니다 . 자음 하나 모음 하나 허투루지 않고 온 마음으로 담아냈습니다 . 데이비드 리의 말처럼 이 책은 ‘ 하늘 동행의 속삭임 ’ 입니다 . 1 부와 2 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. 1 부는 윤석언 형제의 병상 일기이고 , 2 부는 친구로 지내는 박수민 선교사가 윤석언 형제와 나누었던 일상과 메일을 옮겨 놓은 글입니다 . 책이 도착하고 이틀 만에 읽었지만 서평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. 일반 책처럼 서평하려니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고 , 그렇다고 온갖 화려한 단어와 수사 ( 修辭 ) 로 채색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. 한 참을 책꽂이 한편에 두었습니다 . 생각을 묵히고 , 생각을 정리한 틈을 갖고 싶었습니다 . 그리고 보름이 지난 오늘이 되서야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. “ 누군가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.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”(27 쪽 ). 손이 약간만 아파도 , 다리가 삐끗하기만 해도 우리는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. 얼마 전에 손에 가시가 박혀 힘든 적이 있었습니다 . 작은 가시였지만 완전히 낫기까지 신경이 온통 아픈 손에 머물렀고 , 행동 하나하나가 불편해서 숨이 막혔습니다 . 작년부터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조금만 걸어도 통증이 느껴져 잘 걷지 못합니다 . 통증이 느껴져 올 때마다 왠지 모를 절망감이 저의 마음을 짓누르곤 합니다 . 그런데 전신마비인 윤석언 형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?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습니다 . 누군가 자신을 도와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다 . 석언 형제의 평균 혈압은 70/50 입니다 (30 쪽 ). 조금만 건강 상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. 그는 살아 있으나 죽어 있습니다 . 그런데도 현재 신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. 석언 형제가 좋아하는 손영진 사모의 < 광야를 지날 때 > 를 들어보았습니다 . 광야를 지날 때 시험을 당할 때 어려운 순간에 인내하라 주 너를 흔드사 감추인 어두움 드러내주시리 인내하라 주안에서 인내하라 기뻐하고 감사하라 주 네 방패되사 그 선하심으로 늘 함께하시며 지키시리 광야를 지날 때 시험을 당할 때 어려운 순간에 감사하라 모든 일 통하여 선을 이루시며 승리케 하시리 감사하라 주 안에서 인내하라 기뻐하고 감사하라 주 네 방패되사 그 선하심으로 늘 함께 하시며 지키시리 . ‘ 어려운 순간에 감사하라 ’ ‘ 인내하라 기뻐하고 감사하라 ’ 이러한 고백들이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. 우리는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‘ 힘내 ’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진작 자신이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러한 말들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. 그럼에도 석언 형제는 일상이라는 고통을 ‘ 감사의 계절 ’(33 쪽 ) 로 치환 시키고 있습니다 . 1. 지난 1 년 동안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음을 2. 부모님과 동생 식구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음을 3. 폐렴 없이 숨을 편히 쉴 수 있음을 4. 공부하는 동안 심한 욕창으로 고생하지 않음을 5. 입으로 먹고 마실 수 있음을 6. 신학공부를 통해 훌륭한 신앙의 친구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게 하심을 7. 이 큰 머리로 학업을 열심히 좇아갈 수 있는 열정을 유지시켜 주심을 8. 부양해야 할 자식이 없고 , 잔소리하는 아내가 없음을 9.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수 있음을 10. 이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삶 속에 보내주심을 감사 , 석언 형제에 비하며 수천수만 배의 감사 제목을 가진 저는 감사는 망각된 단어처럼 가물가물합니다 .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을 내려놓고 감사 제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. 남루한 재정 상태로 인해 제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는지 , 우여곡절을 겪어 오면서 삶을 비관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았습니다 . 비교하는 감사가 가장 하급의 감사라 했지만 석언 형제와 비교하니 감사할 이유가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룹니다 .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쓸 만한 육체도 있고 , 건강이 썩 좋지 않지만 다부지고 예쁜 아내가 곁에 있습니다 . 혼자서 걸을 수도 있고 , 말도하고 , 화장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. 십 년이 넘어 불안하긴 하지만 아직 잘 굴러가는 승용차도 가지고 있습니다 . 가끔 말을 듣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지만 건강한 아이들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. 한없이 우울할 것 같지만 석언 형제는 유머가 많고 개구쟁이입니다 . 온 힘을 짜내 이야기 하려다 말 대신 방귀가 나온 이야기 , 간호사님이 가려운 곳을 긁어 주자 자신도 모르게 침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합니다 . 사고 나기 전 암벽 등반을 좋아했다는 석언 형제는 성격도 쾌활하고 건강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. 전신 마비에 걸린 사람이 맞는가 싶을 만큼 마음이 건강하고 밝습니다 .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 같습니다 . 책을 읽어 나가면서 불쌍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나 짠 ~ 한 생각들은 어느 새 사라지고 석언 형제 곁에서 함께 웃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. 석언 형제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읽어 나갔습니다 . 그런데 책을 덮고 나자 기적은 석언 형제가 아니라 나에게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.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. 그러니 기적이 필요한 사람은 석언 형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닐까요 ? 언제 죽을지 몰라 이미 써놓은 유서를 보니 천사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. 책을 덮으며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. 매일 감사 5 가지를 적으려고 합니다 . 열 가지 감사를 한 석언 형제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시작하는 것으로 위로 삼고자 합니다 . 책은 쉽게 읽힙니다 .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라 무겁지 않습니다 . 하지만 환우가 있는 가족이나 사람들이라면 석언 형제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. 평이하나 깊고 , 단순하나 높은 전신마비 환우의 일상입니다 . 감사를 잃어버리고 척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.